고교 입학 전 1년간 '인생설계'... 이런 학교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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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조회 2,025회
작성일 14-08-05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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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지수 1위, 덴마크의 비결을 찾아서 ⑩] '애프터 스쿨'이 뭐지?
13.09.27 14:17 l 최종 업데이트 13.09.27 17:17
"덴마크가 전 세계 행복지수 조사에서 또 1위를 했네요. 정말 그 나라는 비결이 뭐길래
그런가요?"
지난 9월 초 유엔은 세계 156개 나라를 대상으로 행복지수 조사를 발표했습니다. 1위는 덴마크, 우리나라는 41위였습니다. 유엔이 미국 컬럼비아대학에 의뢰한 이 조사에서 덴마크는 작년에도 1위를 했습니다. 제가 <오마이뉴스>에 '행복지수 1위 덴마크의 비결'을 연재해온 것을 알고 있는 이들은 이렇게 물어봅니다.
"그들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들이 여러 가지가 있을 터인데 딱 한 가지만 든다면 뭔가요?"
저는 이렇게 답합니다.
"덴마크인들은, 내 인생을 어떻게 살지 여유를 두고 스스로 선택합니다. 국가와 사회는 그런 환경을 보장해줍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애프터 스쿨(After School)입니다."
국영수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애프터 스쿨? 어떤 사람은 우리나라의 방과후 수업을 떠올릴 겁니다. 그러나 이건 몇 시간짜리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아예 1년을 통째로 빼내 만든 '또 하나의 학교'입니다. 덴마크는 초등학교가 우리의 중학교를 포함해서 9학년까지 있는데요, 고등학교는 10학년이 아니라 11학년부터 시작합니다. 그럼 10학년은? 이 1년을 바로 애프터 스쿨이라고 부릅니다. 이른바 인생설계학교입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내가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지 이 학교에서 설계하는 거지요.
덴마크에는 250여 개의 애프터 스쿨에서 3만 명의 10학년들이 다니고 있습니다. 10학년인 애프터스쿨을 보내는 방법은 다양합니다. 집에서 가까운, 9학년까지 다니던 학교에서 계속 다닐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집을 떠나서 기숙형 학교로 갑니다. 종합교육을 한 곳도 있고, 체육·음악 등 특별교육을 중심으로 한 곳도 있습니다. 사립학교가 대부분인데 정부가 운영예산의 50%를 지원하니 사실상 반 공립입니다. 협동조합으로 운영하는 곳도 있습니다. 어떤 애프터 스쿨에서 공부할지, 선택지는 다양하지만 공통점이 있습니다. 공부보다는 인생설계가 중심이라는 거죠.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에 있는 이드랫츠 애프터 스쿨(Idræts Efterskole)을 방문했습니다. 설립한 지 9년된 이 학교는 축구와 핸드볼을 가르치는 스포츠 전문 애프터 스쿨인데 15명의 선생님이 135명의 학생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학교가 뭐 이래? 얼핏보면 2층짜리 숙소가 줄지어선 평범한 모텔 같습니다. 바로 옆에 지방정부에서 지어놓은 근사한 축구경기장과 핸드볼 경기장이 있다는 것을 알고서야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얼마나 축구 좋아하느냐'가 학생 선발 기준
저를 반갑게 맞이해준 얀 바슬리브(Jan Barslev)씨는 이 학교의 교장인데 올해 마흔 셋이랍니다. 청바지 차림의 그는 지나가는 학생들과 이웃 삼촌처럼 말을 주고받습니다. 핸드볼 코치였던 그는 2004년 친구 2명과 함께 이 학교를 협동조합 방식으로 설립했습니다. 그는 "나는 설립자이지만 소유자는 아니"라고 강조하더군요. 매월 일정액을 내는 200여명의 협동조합원이 학교 운영위원회를 구성하고, 이들이 뽑은 9명의 이사가 학교를 경영합니다.
바슬리브 교장은 이 학교가 인기가 있다고 자랑합니다. 남자 축구팀의 경우 입학경쟁률이 5:1가량 된다고 하네요. 그런데 입학시험은 없습니다. 인터뷰 만으로 선발합니다.
- 그럼 어떤 기준으로 합격시키나요?
"저는 지망생을 인터뷰할 때 어느 정도 잘 하느냐, 포지션이 어디냐고 안 물어봅니다. 대신 얼마나 축구를 좋아하느냐, 매일 아침 8시에 축구연습을 할 수 있느냐를 물어보지요."
- 얼마나 잘 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사랑하느냐를 보는군요.
"학생의 25%정도는 나중에 프로선수를 지향할 정도의 엘리트들이지만 나머지는 꼭 그렇지 않습니다. 그냥 축구가 좋아서 취미로 하고 싶어서 오는 학생들도 많아요."
축구게임은 수준별로 나눠서 1주일에 8번 정도 하는데 잘하고 못하고를 따지는 시험은 없다고 합니다.
바슬리브 교장은 "이곳에서 학생들이 '사는 법'(life skill)을 배운다"고 합니다.
"국어도 배우고 수학도 배우고 축구도 배우지만 그것들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나는 어떤 인생을 살 것인가, 다른 사람과 어떻게 함께할 것인가, 이런 질문의 답을 찾는 거지요. 그러면서 민주적인 사회의 일원으로 좀더 성숙해가는 것이 바로 애프트 스쿨입니다."
인생설계, 서른다섯에 무엇이 되고 싶은가?
- 그럼 '나의 인생계획 짜보기' 이런 과목도 있나요?
"있습니다. 1년에 4번 합니다. 1월, 3월, 9월, 11월에 각 1주일씩 '인생 플랜 만들기'를 하지요. 이때 학생들에게 이런 질문이 주어집니다. 서른 다섯 살이 되었을 때 당신은 무엇을 하고 싶은가? 만약 선생님이 되고 싶다면 그것을 가능케 하는 구체적 플랜을 짜보는 겁니다."
애프터 스쿨의 인생계획 짜기는 '스스로'와 '더불어'라는 두 개의 바퀴로 굴러갑니다. 바슬로브 교장은 '스스로 결정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그래서 부모들도 이 애프터 스쿨을 좋아합니다. 아이들이 부모를 떠나 여기에서 자립심을 키우는 거지요. 하다못해 아침에 부모가 깨우지 않아도 스스로 일어나는 게 매우 중요하지 않습니까?"
'스스로'와 함께 '더불어'가 가능하도록 바슬로브 교장은 다양한 방법을 쓴다고 설명합니다.
"한 집에 12명이 살고, 한 방에 3명씩 동거합니다. 이들이 방청소부터 시작해서 매일매일 그 집에서 발생하는 일들을 토론을 통해 풀어나가는 거지요. 기숙사에는 이런 집이 12개가 있습니다. 집마다 대표 학생 한 명이 선발되며 이 대표들이 일주일에 한번씩 모여 대표자회의를 통해 마을을 이끌어갑니다."
학생들의 하루는 대체로 이렇습니다. 아침 7시에 일어나 식사를 하고 8시부터 점심까지는 축구나 핸드볼 기본 훈련을 합니다. 점심 후 오후 4시까지는 덴마크어, 수학, 물리 등 기존 학과 과목을 수업합니다. 그리고 오후 4시부터 저녁 9시까지는 축구나 핸드볼 실전게임을 합니다.
"좋아하는 것이 비슷하니 빨리 친해진다"
한국에서 온 기자와 교장이 이야기 나누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남학생 루커스 베스턴(Lucas Bastin)군은 10개월째 이 학교에 기숙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핸드볼을 좋아해서"왔다고 합니다. 가능하면 프로선수로도 성장하고 싶다는군요.
- 가장 좋은 점은?
"좋아하는 것이 비슷한 다른 학생들과 매일 같이 어울릴 수 있어 정말 좋습니다. 좋아하는 것이 비슷하니까 훨씬 빨리 친해지더라고요."
- 방에서 3명이 함께 지내니까 다툴 때도 있을텐데요.
"뭐 그럴 때도 가끔 있지만 함께 사는 법을 매우 빨리 배웠습니다. 작은 가족 같아 재미있을 때가 많아요."
- 10개월 동안 여기 있었는데, 스스로 생각하기에 좀 성장한 거 같나요?
"예, 많이 성장한 거 같아요."
- 가장 어려웠던 점은?
"내 껍데기를 벗고 나오는 거였어요. 처음엔 매우 수줍었습니다. 다른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두려웠지요. 그러나 곧 어울렸어요. 선생님들이 수업이나 활동에서 우리가 잘 어울리도록 다양하게 도와줬습니다."
이 학생과 교장선생님과 함께 학교를 한바퀴 돌아보았습니다. 식당은 깨끗한 편인데 전문 영양사들이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학생들이 조를 짜서 조리를 돕는다고 하네요. 기타, 드럼 등 악기가 마련된 공연장도 잘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1년에 서너번 학부모를 초청해서 축제도 한다고 합니다.
건물 1층 한켠에는 컴퓨터 20여 대가 놓인 교실이 있었는데 대여섯명의 학생들이 우리가 다가오는 줄도 모르고 컴퓨터 앞에 앉아 뭔가에 열중하고 있었습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역시나 게임중이었습니다. 한국에서처럼 여기 학생들도 인터넷게임에 중독된 경우가 많을까요? 루커스 베스턴 학생은 고개를 젓습니다.
"저도 인터넷게임을 합니다. 그러나 중독되진 않습니다. 밖에 나가서 핸드볼 게임하는 것을 더 좋아하니까요."
핸드볼을 하면서 심리학을 공부한다?
학교를 둘러보고 헤어지기 직전 베스턴 학생에게 물었습니다.
- 그래서 '인생계획'은 잘 짜고 있나요?
"여기를 졸업하면 고등학교에 진학할 겁니다. 그후에 코펜하겐 대학에서 심리학을 공부할 예정입니다."
궁금해졌습니다. 핸드볼을 좋아하는 그가, 핸드볼 프로선수를 꿈꾸는 그가 왜 대학에서 하필 심리학을 공부한다고 할까요?
"나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사람과 대화하는 것이 좋아요. 사람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을 잘 파악해서 그를 도와주고 싶습니다."
- 심리학을 공부하는 것과 핸드볼 선수가 되고자 노력하는 것, 둘 다 잘 할 수 있다고 보나요?
"그렇습니다. 두 개는 아주 관련성이 높으니까요. 제겐 핸드볼, 축구 게임을 하는 것이 곧 심리학 공부이기도 합니다. 어떤 한 선수가 운동장에서 플레이를 하는 것을 보고 있으면 그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고, 상황을 어떻게 파악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지 않나요?"
이 10학년 학생 참 대견하지요? 한국 나이로 50세인 저는 우리 교회팀에서 매주 축구를 하지만 경기를 하면서 심리학을 공부해볼 생각은 못했습니다(덴마크에서는 프로선수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는 학생을 교육할 때 반드시 일반공부도 함께 시킨다고 합니다. 스포츠 세계에서 프로선수로 성공할 가능성은 1%미만이기 때문에 그것을 지향하되 그것이 안 되어도 자존감을 가지고 생활할 수 있도록 그렇게 한다는군요).
이 학생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중3 졸업생을 불러놓고 이렇게 말할 수 있는 부모가 몇이나 될까요?
'아이야, 공부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단다. 너는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 것이냐? 고등학교 들어가는 것 급하지 않다. 그 답을 찾아서 1년간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보아라.'
이것이 한 부모의 결단이 아니라 사회 문화로, 국가 시스템으로 가능한 곳이 행복지수 1위의 나라 덴마크입니다.
우리 인생에도 '애프터 스쿨'이 필요하다
지난 9월 초 유엔은 세계 156개 나라를 대상으로 행복지수 조사를 발표했습니다. 1위는 덴마크, 우리나라는 41위였습니다. 유엔이 미국 컬럼비아대학에 의뢰한 이 조사에서 덴마크는 작년에도 1위를 했습니다. 제가 <오마이뉴스>에 '행복지수 1위 덴마크의 비결'을 연재해온 것을 알고 있는 이들은 이렇게 물어봅니다.
"그들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들이 여러 가지가 있을 터인데 딱 한 가지만 든다면 뭔가요?"
저는 이렇게 답합니다.
"덴마크인들은, 내 인생을 어떻게 살지 여유를 두고 스스로 선택합니다. 국가와 사회는 그런 환경을 보장해줍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애프터 스쿨(After School)입니다."
국영수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애프터 스쿨? 어떤 사람은 우리나라의 방과후 수업을 떠올릴 겁니다. 그러나 이건 몇 시간짜리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아예 1년을 통째로 빼내 만든 '또 하나의 학교'입니다. 덴마크는 초등학교가 우리의 중학교를 포함해서 9학년까지 있는데요, 고등학교는 10학년이 아니라 11학년부터 시작합니다. 그럼 10학년은? 이 1년을 바로 애프터 스쿨이라고 부릅니다. 이른바 인생설계학교입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내가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지 이 학교에서 설계하는 거지요.
덴마크에는 250여 개의 애프터 스쿨에서 3만 명의 10학년들이 다니고 있습니다. 10학년인 애프터스쿨을 보내는 방법은 다양합니다. 집에서 가까운, 9학년까지 다니던 학교에서 계속 다닐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집을 떠나서 기숙형 학교로 갑니다. 종합교육을 한 곳도 있고, 체육·음악 등 특별교육을 중심으로 한 곳도 있습니다. 사립학교가 대부분인데 정부가 운영예산의 50%를 지원하니 사실상 반 공립입니다. 협동조합으로 운영하는 곳도 있습니다. 어떤 애프터 스쿨에서 공부할지, 선택지는 다양하지만 공통점이 있습니다. 공부보다는 인생설계가 중심이라는 거죠.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에 있는 이드랫츠 애프터 스쿨(Idræts Efterskole)을 방문했습니다. 설립한 지 9년된 이 학교는 축구와 핸드볼을 가르치는 스포츠 전문 애프터 스쿨인데 15명의 선생님이 135명의 학생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학교가 뭐 이래? 얼핏보면 2층짜리 숙소가 줄지어선 평범한 모텔 같습니다. 바로 옆에 지방정부에서 지어놓은 근사한 축구경기장과 핸드볼 경기장이 있다는 것을 알고서야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얼마나 축구 좋아하느냐'가 학생 선발 기준
▲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에 있는 이드랫츠 애프터스쿨(Idræts Efterskole). 이 학교의 교장 얀 바슬리브(Jan Barslev)씨는 학생들과 삼촌처럼 어울린다. | |
ⓒ 오연호 |
저를 반갑게 맞이해준 얀 바슬리브(Jan Barslev)씨는 이 학교의 교장인데 올해 마흔 셋이랍니다. 청바지 차림의 그는 지나가는 학생들과 이웃 삼촌처럼 말을 주고받습니다. 핸드볼 코치였던 그는 2004년 친구 2명과 함께 이 학교를 협동조합 방식으로 설립했습니다. 그는 "나는 설립자이지만 소유자는 아니"라고 강조하더군요. 매월 일정액을 내는 200여명의 협동조합원이 학교 운영위원회를 구성하고, 이들이 뽑은 9명의 이사가 학교를 경영합니다.
바슬리브 교장은 이 학교가 인기가 있다고 자랑합니다. 남자 축구팀의 경우 입학경쟁률이 5:1가량 된다고 하네요. 그런데 입학시험은 없습니다. 인터뷰 만으로 선발합니다.
- 그럼 어떤 기준으로 합격시키나요?
"저는 지망생을 인터뷰할 때 어느 정도 잘 하느냐, 포지션이 어디냐고 안 물어봅니다. 대신 얼마나 축구를 좋아하느냐, 매일 아침 8시에 축구연습을 할 수 있느냐를 물어보지요."
- 얼마나 잘 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사랑하느냐를 보는군요.
"학생의 25%정도는 나중에 프로선수를 지향할 정도의 엘리트들이지만 나머지는 꼭 그렇지 않습니다. 그냥 축구가 좋아서 취미로 하고 싶어서 오는 학생들도 많아요."
축구게임은 수준별로 나눠서 1주일에 8번 정도 하는데 잘하고 못하고를 따지는 시험은 없다고 합니다.
바슬리브 교장은 "이곳에서 학생들이 '사는 법'(life skill)을 배운다"고 합니다.
"국어도 배우고 수학도 배우고 축구도 배우지만 그것들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나는 어떤 인생을 살 것인가, 다른 사람과 어떻게 함께할 것인가, 이런 질문의 답을 찾는 거지요. 그러면서 민주적인 사회의 일원으로 좀더 성숙해가는 것이 바로 애프트 스쿨입니다."
인생설계, 서른다섯에 무엇이 되고 싶은가?
- 그럼 '나의 인생계획 짜보기' 이런 과목도 있나요?
"있습니다. 1년에 4번 합니다. 1월, 3월, 9월, 11월에 각 1주일씩 '인생 플랜 만들기'를 하지요. 이때 학생들에게 이런 질문이 주어집니다. 서른 다섯 살이 되었을 때 당신은 무엇을 하고 싶은가? 만약 선생님이 되고 싶다면 그것을 가능케 하는 구체적 플랜을 짜보는 겁니다."
애프터 스쿨의 인생계획 짜기는 '스스로'와 '더불어'라는 두 개의 바퀴로 굴러갑니다. 바슬로브 교장은 '스스로 결정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그래서 부모들도 이 애프터 스쿨을 좋아합니다. 아이들이 부모를 떠나 여기에서 자립심을 키우는 거지요. 하다못해 아침에 부모가 깨우지 않아도 스스로 일어나는 게 매우 중요하지 않습니까?"
'스스로'와 함께 '더불어'가 가능하도록 바슬로브 교장은 다양한 방법을 쓴다고 설명합니다.
"한 집에 12명이 살고, 한 방에 3명씩 동거합니다. 이들이 방청소부터 시작해서 매일매일 그 집에서 발생하는 일들을 토론을 통해 풀어나가는 거지요. 기숙사에는 이런 집이 12개가 있습니다. 집마다 대표 학생 한 명이 선발되며 이 대표들이 일주일에 한번씩 모여 대표자회의를 통해 마을을 이끌어갑니다."
학생들의 하루는 대체로 이렇습니다. 아침 7시에 일어나 식사를 하고 8시부터 점심까지는 축구나 핸드볼 기본 훈련을 합니다. 점심 후 오후 4시까지는 덴마크어, 수학, 물리 등 기존 학과 과목을 수업합니다. 그리고 오후 4시부터 저녁 9시까지는 축구나 핸드볼 실전게임을 합니다.
"좋아하는 것이 비슷하니 빨리 친해진다"
▲ 10개월째 이 학교에서 기숙하는 루커스 베스턴(Lucas Bastin) 학생. 핸드볼 선수를 꿈꾸지만 동시에 심리학을 공부하고 싶단다. | |
ⓒ 오연호 |
한국에서 온 기자와 교장이 이야기 나누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남학생 루커스 베스턴(Lucas Bastin)군은 10개월째 이 학교에 기숙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핸드볼을 좋아해서"왔다고 합니다. 가능하면 프로선수로도 성장하고 싶다는군요.
- 가장 좋은 점은?
"좋아하는 것이 비슷한 다른 학생들과 매일 같이 어울릴 수 있어 정말 좋습니다. 좋아하는 것이 비슷하니까 훨씬 빨리 친해지더라고요."
- 방에서 3명이 함께 지내니까 다툴 때도 있을텐데요.
"뭐 그럴 때도 가끔 있지만 함께 사는 법을 매우 빨리 배웠습니다. 작은 가족 같아 재미있을 때가 많아요."
- 10개월 동안 여기 있었는데, 스스로 생각하기에 좀 성장한 거 같나요?
"예, 많이 성장한 거 같아요."
- 가장 어려웠던 점은?
"내 껍데기를 벗고 나오는 거였어요. 처음엔 매우 수줍었습니다. 다른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두려웠지요. 그러나 곧 어울렸어요. 선생님들이 수업이나 활동에서 우리가 잘 어울리도록 다양하게 도와줬습니다."
이 학생과 교장선생님과 함께 학교를 한바퀴 돌아보았습니다. 식당은 깨끗한 편인데 전문 영양사들이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학생들이 조를 짜서 조리를 돕는다고 하네요. 기타, 드럼 등 악기가 마련된 공연장도 잘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1년에 서너번 학부모를 초청해서 축제도 한다고 합니다.
건물 1층 한켠에는 컴퓨터 20여 대가 놓인 교실이 있었는데 대여섯명의 학생들이 우리가 다가오는 줄도 모르고 컴퓨터 앞에 앉아 뭔가에 열중하고 있었습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역시나 게임중이었습니다. 한국에서처럼 여기 학생들도 인터넷게임에 중독된 경우가 많을까요? 루커스 베스턴 학생은 고개를 젓습니다.
"저도 인터넷게임을 합니다. 그러나 중독되진 않습니다. 밖에 나가서 핸드볼 게임하는 것을 더 좋아하니까요."
핸드볼을 하면서 심리학을 공부한다?
학교를 둘러보고 헤어지기 직전 베스턴 학생에게 물었습니다.
- 그래서 '인생계획'은 잘 짜고 있나요?
"여기를 졸업하면 고등학교에 진학할 겁니다. 그후에 코펜하겐 대학에서 심리학을 공부할 예정입니다."
궁금해졌습니다. 핸드볼을 좋아하는 그가, 핸드볼 프로선수를 꿈꾸는 그가 왜 대학에서 하필 심리학을 공부한다고 할까요?
"나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사람과 대화하는 것이 좋아요. 사람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을 잘 파악해서 그를 도와주고 싶습니다."
- 심리학을 공부하는 것과 핸드볼 선수가 되고자 노력하는 것, 둘 다 잘 할 수 있다고 보나요?
"그렇습니다. 두 개는 아주 관련성이 높으니까요. 제겐 핸드볼, 축구 게임을 하는 것이 곧 심리학 공부이기도 합니다. 어떤 한 선수가 운동장에서 플레이를 하는 것을 보고 있으면 그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고, 상황을 어떻게 파악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지 않나요?"
이 10학년 학생 참 대견하지요? 한국 나이로 50세인 저는 우리 교회팀에서 매주 축구를 하지만 경기를 하면서 심리학을 공부해볼 생각은 못했습니다(덴마크에서는 프로선수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는 학생을 교육할 때 반드시 일반공부도 함께 시킨다고 합니다. 스포츠 세계에서 프로선수로 성공할 가능성은 1%미만이기 때문에 그것을 지향하되 그것이 안 되어도 자존감을 가지고 생활할 수 있도록 그렇게 한다는군요).
이 학생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중3 졸업생을 불러놓고 이렇게 말할 수 있는 부모가 몇이나 될까요?
'아이야, 공부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단다. 너는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 것이냐? 고등학교 들어가는 것 급하지 않다. 그 답을 찾아서 1년간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보아라.'
이것이 한 부모의 결단이 아니라 사회 문화로, 국가 시스템으로 가능한 곳이 행복지수 1위의 나라 덴마크입니다.
우리 인생에도 '애프터 스쿨'이 필요하다
▲ 더불어 사는 법 배운다 덴마크에는 250여 애프터스쿨이 있는데 대부분 기숙형이다. 이 애프터스쿨에서는 학생 3명이 한 방을 쓰고 있다. | |
ⓒ 오연호 |
바슬로브 교장은 말합니다. 애프터 스쿨은 고등학교 입학 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요.
"덴마크는 그런 인생플랜 학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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