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순협 대안대학 입학설명회의 참석자들. 사진 = 지식순환협동조합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안창현 기자) 아직도 대학을 진리 탐구의 상아탑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한국에서 대학은 상아탑은커녕 냉혹한 경쟁사회의 축소판이 되지는 않았나? 서열화된 한국 대학은 입시 위주의 경쟁 교육을 부추기고, 이를 위해서 학생과 학부모들은 더 좋은 고등학교, 또 더 좋은 중학교와 초등학교 진학을 위해 어린 나이부터 경쟁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대학에 입학한다고 사정이 나아지는 것도 아니다. 취업 경쟁의 문턱에서 대학은 취업학교가 될 뿐이다.
기존 대학들이 안고 있는 한계를 넘기 위한 지식순환협동조합이 지난 1월부터 ‘대안대학’의 문을 열었다. 협동조합 형태로 운영되는 2년 대학과정이다. 경쟁 사회 속 취업 전쟁터로 전락한 기존 대학을 극복하고 새로운 대학을 만들겠다는 취지다. 국내에서는 협동조합이 운영하는 대학 형태가 생소하지만, 해외 사례는 적지 않다. 근대 대학의 효시로 평가받는 프랑스 파리8대학과 이탈리아 볼로냐대학은 협동조합으로 시작됐다. 스페인 몬드라곤대학도 협동조합 기업인 몬드라곤의 대안대학이다.
▲ 지순협 대안대학의 강정석 사무국장. 사진 = 안창현 기자
교육을 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조합원으로 동등하게 참여해 지식의 생산과 소비에 함께 참여하는, 그래서 가르침과 배움의 지식 순환이 이루어지는 교육. 지식순환협동조합 대안대학이 추구하는 교육이다.
올해 수능 응시자는 59만4835명이었다. 해마다 수십만 명의 학생들이 대학의 문을 두드리지만, 정작 대학에 들어가면 취업이란 또 다른 무한경쟁이 학생들을 기다리고 있다. 누구도 대학 교육의 본질을 학점, 취업, 스펙 쌓기로 생각하지 않지만 대학이 처한 현실은 그렇다.
지식순환협동조합(이하 지순협) 대안대학의 강정석 사무국장(35)은 “대학들은 점차 기업화되고 있고, 대학 내 학과들은 취업률을 기준으로 통폐합되고 있다. 대학이 취업학교처럼 변질된 현실에 많은 이들이 문제를 제기한다. 대학 내 교수들도 마찬가지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 이 같은 대학의 문제를 우리는 어떻게 해결해나가야 할까 고민하는 과정에서 대안대학을 열게 됐다”고 말했다.
지순협 대안대학은 ‘경쟁사회와 경쟁교육을 넘어 협력사회와 협력교육’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학생들을 경쟁에 내몰아 1등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고, 자신을 이해하고 나아가 인간과 사회를 이해하는 것이 교육의 본질이라고 봤다.
강 사무국장은 대안대학을 “남들 다 간다고 무턱대고 가는 대학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삶을 기획하고 숨 가쁘게 변화하는 사회를 예측하는 곳, 스스로 자신의 삶을 기획하고 나아갈 길을 탐색하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강 사무국장의 말에 따르면 지순협 대안대학에서는 배우는 사람과 가르치는 사람의 구분이 따로 없다. 그는 “우리는 이를 ‘배우는 자가 가르칠 수 있는 용기, 가르치는 자가 배울 수 있는 용기’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배우는 학생뿐 아니라 가르치는 선생도 서로 잘 모르는 것을 이야기하며 지식을 순환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지식순환협동조합 대안대학 설립을 위한 공개토론회. 사진 = 지식순환협동조합
지순협 대안대학은 협동조합으로 운영된다. 학생과 선생은 동등한 조합원이기 때문에 서로 위계가 없다. 학생이라도 자기 관심 분야를 살려 선생이 될 수 있고, 선생 역시 수업을 듣고자 원한다면 학생이 될 수 있는 구조다. 민주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노력도 협동조합 모델을 택한 이유가 됐다.
“학생이든 선생이든 같은 조합원으로서 학교 운영에 동등한 참여권을 가진다. 총회에서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를 나누지 않고 서로 만나게 하려면 협동조합의 원리가 적합하다고 생각했다”고 강 사무국장은 말했다.
대안대학의 이와 같은 운영방식을 잘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대안대학에서는 학생들마다 담임교수를 배정하는데, 지난 1월 7일 가진 오리엔테이션에서 학생들은 자신들이 직접 담임교수를 뽑았다.
“원래 그럴 의도는 아니었다. 오리엔테이션 날 선생님들이 앞에 나가 자기소개를 했는데, 그 과정에서 자신을 담임교수로 뽑으면 어떻게 하겠다는 홍보를 하시는 거다. 여기에 학생들이 손을 들어 호응했고, 자연스럽게 자신을 지도할 담임교수를 직접 뽑게 됐다.”
학생과 선생의 관계가 자유롭고 평등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대학 교육뿐 아니라 한국의 교육 현실에서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것 중 하나가 교육을 제공하는 사람과 교육을 받는 사람의 경계가 뚜렷해 서로 소통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교육이 이뤄진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지순협 대안대학은 그런 경계를 허물고, 지식의 순환을 추구한다.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커리큘럼
올해 대안대학에 입학한 이솔잎(20) 씨는 남들이 다 가는 대학에 자신도 그냥 따라가는 것은 아닌지 대학입학에 대해 고민했다. “평범한 인문계 고등학교에 다녔지만 일반 대학 진학을 선호한 편은 아니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지순협 대안대학을 알게 됐다. 학교의 커리큘럼을 보고 너무 마음에 들어 입학을 결심했다.”
대안대학이 협동조합으로 운영된다고는 하지만, 형식상 운영방식은 일반 대학과 비슷하다. 대입 절차를 거쳐 합격하면 등록금을 내고 과목을 수강한다. 학생들은 2년의 교과과정을 이수하고 졸업 요건을 갖춰 졸업한다.
▲ 지난 12월 5일 서울시사회적경제센터, 지순협 대안대학의 입학설명회에서 이명원 교과위원장(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이 교과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 지식순환협동조합
대안대학이 일반 대학과 다른 점은 이 씨가 말한 것처럼 학교의 커리큘럼에 있다. 모든 교육과정의 중심에 학생이 있다. 전공에 제한받지 않고 자신에게 필요한 과목을 찾아 수강하고, 졸업 후 자신의 진로를 스스로 설계해 발표한다.
강 사무국장은 “지순협 대안대학을 꾸리려는 움직임은 2013년 교과위원회가 만들어진 이후 본격화됐다. 인문학과 사회과학, 자연과학이 분과학문의 틀을 넘어 학생들이 종합적으로 사고할 수 있도록 교과과정을 구성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통섭’이라는 가치를 중심으로 분과학문을 넘어 다른 학문 간 협력을 이룰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를 위해선 무엇보다 먼저 교육자들의 적극적으로 협력이 필요했다. 실제 교과위원회가 2013년 한 해 동안 매주 회의를 하면서 대안대학의 커리큘럼을 구성했지만 쉽지만은 않았다.
강 사무국장은 “각기 다른 전공 분야의 선생님들이 참여하시다 보니 협력과 통섭이 말처럼 쉽지 않았다. 교육 방향을 두고 갈등을 빚기도 했다. 또 새로운 선생님이 교과위원회에 참여하시면서 새로운 관점이 추가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예를 들면 대안대학의 커리큘럼 중 ‘자기탐구와 돌봄’ 과목 같은 경우는 교과위원회에서 이전에 전혀 논의하지 않았던 영역이었다고 한다. 심리학을 전공한 교사가 참여하면서 비로소 위원회 내부적으로 그 중요성이 강조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 2015학년도 지순협 대안대학의 교과과정.
대안대학은 전체 2년 과정 총 8학기로 나뉘어 있으며 1학기는 3개월 과정이다. 각각의 학기는 2개월의 이론 및 워크숍 과정과 2주간의 발표, 나머지 2주는 방학으로 구성된다.
특징은 이론과 워크숍이 동시에 이뤄진다는 점이다. 강 사무국장은 “워크숍 과정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들여다보고, 의사소통 방법을 익혀 타인과의 공감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 다양한 매체를 활용해 표현해보고 대안적인 삶을 꿈꿔보는 실무적 지식을 쌓는 과정이다”고 설명했다.
마지막 7~8학기는 자유전공 기간인데, 이 기간에 자신이 걷고자 하는 진로를 설명하고 이를 보여줄 결과물을 제출해야 졸업이 가능하다. 스스로 자기만의 전공을 만들고 이후 삶의 진로방향까지 구체화시키는 작업이다.
“결과물의 형식은 논문, 보고서, 기획서, 시나리오, 공연 등 제한을 두지 않는다. 2년간의 학사과정을 마치고 삶의 계획을 세우는 단계이므로 더욱 꼼꼼하게 졸업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