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과 더불어 익는 옥수수’, 농촌은 살아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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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과 더불어 익는 옥수수’, 농촌은 살아 움직인다
사회적 농촌경제’ 홍성 홍동마을 르포
지난 5월12일 충남 홍성군 홍동면의 홍동마을. 마을 길 여기저기에 불도저가 투입돼 공사가 한창이다. 면사무소 중심 반경 1㎞에 사람이 다니는 보행로를 까는 사업이다. 농촌 면 단위에서 보행환경 개선사업이 벌어지는 건 국내 최초다. 어린이를 비롯해 마을 사람이 많다는 방증이다. 집집마다 폐허로 버려져 있고 아이들 웃음소리를 들을 수 없고 들판에서 일하거나 신작로를 걸어다니는 사람도 만나기 어려운 적막한 여느 농촌과는 영 딴판이다. “이 마을은 사람은 끊임없이 들어오려는데 빈집이 없어 난리예요.” 홍동마을의 지역센터인 ‘마을활력소’ 일꾼 서경화(45)씨의 말이다. 홍동초등학교는 전교생 118명(유치원 20명), 이웃에 있는 장곡초는 48명(유치원 13명)이다.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농업의 비중은 1995년 5.6%에서 2013년 2.1%로 떨어졌다. 정부는 90년대 이후 ‘행복농촌’을 내세우며 농촌 주민 삶의 질 향상과 귀농 활성화를 추진하고 있다. 젊은이 결핍으로 점차 위태롭게 쇠락해가는 농촌에 정부가 그동안 펴온 정책사업은 농촌체험마을, 농촌종합개발사업, 마을만들기(권역사업) 등이다. 그러나 다양한 시도와 물적 자원 투입에도 농촌은 퇴락을 면치 못한 채 고령화 속에 악순환 상태에 놓여 있다. 그런 점에서 자율적·자생적인 ‘사회적 농촌경제’로서 홍동마을의 형성과 작동은 놀라운 경험이다.
‘사회적 경제로서의 농촌’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이날 홍동마을에 모였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연, 농촌 밀착적 대안을 고민하는 현장토론회다. 농촌에서 사회적 경제조직이 성장·확산하려면 어떤 조건이 충족돼야 할까? 다른 농촌마을에도 퍼뜨릴 만한, 이 마을에서 발견되는 유효한 요소는 뭘까?
인구 3500여명의 자그마한 마을
쇠락해가는 다른 농촌과 달리 활기
“끊임없이 사람 들어오는데 빈집 없어”
교육·관광·목공 등 40여개 주민단체
‘더불어 사는 마을’ 위해 협동조합 꾸려
마을 술집 만들어 돌아가며 홀 당번도
공동학습·협력으로 의미있는 농촌 꿈
살아 움직이는 농촌마을
홍성군에서 ‘사회적 경제조직’이 두드러진 마을은 두곳(홍동면·장곡면)이다. ‘자립하는’ 홍동마을의 독특한 경험은 이미 이목이 집중돼 사람들의 발길이 잦다. 홍동면과 이웃 장곡면 주민은 각각 3500여명이다. 조용하고, 여느 농촌마을과 별반 다를 게 없다. 돈을 억수로 들인 큰 건물도, 몇몇 부농의 특화시설도 없다. 고만고만한 소농들이 유기농업과 축산으로 순환농업을 하며 사는 작은 마을이다.
그러나 이곳엔 여러 주민‘조직’들이 소리 없이 살아 움직인다. 홍동면에는 무려 40여개의 단체(농업 및 가공, 교육, 관광, 음식점, 목공, 에너지 등)가 있고, 이 중 20여개가 협동조합이거나 협동조합을 지향하는 조직이다. 2000년 이후 생겨난 단체가 27개로, 협동조합기본법 제정(2012년 말) 훨씬 이전이다. 더불어 사는 마을을 만들려는 소농들의 소박한 생각이 지역을 조금씩 변화시키는 과정을 오랜 기간 거쳐 왔다. 서경화씨는 “마을 곳곳에 협동조합들이 흩어져 있다. 단체가 너무 많다고 할 정도”라며 엷게 웃었다. 홍동마을에 있는 여러 단체는 주제별로 협동조합, 유기농업, 대안교육 등으로 나눌 수 있다.
무엇보다 마을을 묶어온 구심은 ‘더불어 살아가는 평민을 기르는’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풀무학교·1958년 개교) 중심의 ‘교육’이다. 풀무질하던 옛 대장간 터에 학교를 세워 ‘풀무’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이 학교 졸업자는 ‘창업생’으로 불린다. 서씨는 “1기 창업생들부터 이 지역에서 처음으로 신용협동조합, 학용품 구판장 등 소비자생활협동조합을 만들어 일하면서 마을이 변화하기 시작했다”고 기원을 설명했다.
협동조직도 갓골어린이집, 발달장애 청소년 직업교육 장소인 ‘꿈이 자라는 뜰’처럼 농업 이외에도 다양하다. 물론 이 마을에서도 ‘망해먹은’ 협동조합이 한둘이 아니다. 마을 안에 있는 밝맑도서관에서 열린 이날 토론회에서 김정섭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홍동은 ‘마을’ 울타리 안에서 배우고 익히고, 관계를 맺고, 자기 자리를 찾아 제 몫의 일을 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농촌”이라며 “새 인구가 유입되면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단체들이 생겨나고 이에 따라 인구가 또 유입되는 선순환 고리가 작동하는 마을”이라고 말했다.
귀농자와 원주민 절반씩
홍동마을은 면 단위치고 외지에서 들어온 귀농자가 많은 편이긴 하나 다수 주민은 영세 소농들이다. 젊은 사람들이 주축인 특이한 농촌도 아니다. 장곡면 문당마을의 경우 토박이 원주민과 젊은 귀농자가 절반 정도씩이다. 장곡면 인구는 1980년 9960명, 2005년 3426명, 2013년 3559명이다. 5월 현재 장곡면 주민 3266명 중 65살 이상 노인은 1381명, 홍동면은 주민 3590명 중 노인 1207명이다. 홍성군 전체 11개 읍·면 노인인구 비율(21.9%)보다 높다.
홍동면도 2010년을 전후해 정부의 농촌마을종합복지사업으로 수십억원을 지원받았다. 서경화씨는 “큰 나랏돈이 들어오는 것에 대해 주민들의 걱정과 우려가 있었다”며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종합해 마을공동체 사업에 사용했다”고 말했다. 정부가 주는 돈을 되레 ‘걱정’하는 풍경은 매우 낯설다. 이날 토론회에서 구자인 충남마을만들기지원센터장은 “이 마을은 ‘정부미 먹는 사람’이나 정부 돈을 지원받는 주민을 조금 싫어하는 분위기도 있다”며 “자립마을 가치를 지향하는 사람들이 지역을 주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실 70·80년대 당시 유기농업은 ‘반골’로 비칠 수도 있었다. 그만큼 홍동은 어느 정도 고립·폐쇄적인 마을이었으나 2000년대 이후 도농교류와 함께 외부에 문을 열면서 같은 뜻을 품은 젊은 귀농·귀촌 인구가 유입되기 시작했다. 이런 경험이 보여주듯, ‘사회적 농촌경제’는 협동조합 같은 제도나 이론보다는 더불어 사는 일상 속에서 터득되고 뿌리내렸다.
단 하나의 마을 맥줏집
홍동마을 송풍사거리의 21세기 할인마트 옆에 차려진 ‘동네마실방 뜰’은 술집이다. 마을 사람들이 조합원으로 참여하는 협동조합 방식으로 운영된다. 술집도 다방도 없던 2011년 어느 여름날, 뙤약볕에서 일한 뒤 시원한 맥주 한잔을 그리워하던 ‘주당’ 몇몇이 마을 통닭집에 모여 앉아 생맥주 기계를 들여다놓고 팔기로 작당했다. 10만원씩 출자한 100여명을 모아 마을에 술집을 차렸다. 마을에서 나는 농산물을 이용해 안주 메뉴를 만들고, 고춧가루는 어느 마을 누가 생산한 것이라고 원산지 표시도 붙였다.
그러나 가게를 해본 경험도, 전문 요리사도 없는 술집이라 매월 회계정산을 해보면 잔고가 바닥나는 일이 빈번했다. 곧바로 대책회의에 들어갔다. 재료비는 그대로 두고, 홀에 고용한 직원 대신에 회원들이 돌아가며 홀 당번을 서 인건비를 줄였다. “술집 회원이 20대 초부터 60대까지 다양해요. 누가 당번을 서느냐에 따라 그날 홍대 클럽이 되기도 하고 트로트 음악이 나오는 술집이 되기도 해요.”(서경화씨) 이 술집은 이제 흑자로 돌아섰다.
마을엔 주민들이 출자한 만화방 협동조합도 있다. 나무집(갓골목공실)이든 흙집(‘얼렁뚝딱’ 생태건축 협동조합)이든 집도 주민들 스스로 목공수가 돼 짓는다. 집 짓는 주인도 공사에 직접 참여해야 한다. 전기·도장·침뜸까지 주민들이 각자 자기 재능을 출자하기도 한다.
협동조합만 우월한 대안 아냐
농촌은 하나의 공동체 ‘사회’이지만 먹고살아가야 할 ‘경제’ 영역임이 분명하다. 사회적 경제 역시 지속 가능해야 한다. 특히 농업엔 토지·시설·농기계 등 ‘자본’이 필요하다. 농촌으로 돌아오려 해도 자본을 모으기 위해 일단 도시로 나가야 하는 게 현실이다. 또 농촌의 일상은 지역 주민들과의 대면 ‘관계’ 속에서 이뤄진다. 도시에 살던 젊은 귀농자가 맨손으로 쉽게 뛰어들기 어려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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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본기사: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69363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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