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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연된 비극: 지원사업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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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성시사회적경제센터 조회 1,639회 작성일 22-08-24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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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에서 온 편지] 49. 정재영 홍성 YMCA 사무총장


오늘은 이 그림을 설명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 합니다. 이 그림은 ‘시스템 사고’라는 분석 방법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인데요. ‘시스템 사고 인과분석지도’라고 합니다.

그림은 -가 있으면 A가 강화될수록 B가 약화하거나 A가 약화할수록 B가 강화된다는 뜻이고, +는 A가 강화될수록 B도 강화되고 A가 약화할수록 B도 약화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표시는 효과가 지연된다는 뜻입니다. 쉽게말해 음식섭취+ 가 포만감 이라고 했을 때 음식을 먹으면 먹을수록 포만감이 상승하게 됩니다. 반대로 음식을 먹지 않으면 포만감은 없어지게 됩니다. 소비- 를 통장잔액 이라고 본다면 소비를 많이 하면 할수록 통장잔액이 줄어들게 됩니다. 반대로 소비가 줄어들면 줄어들수록 통장잔액이 늘어날 수 있습니다.

이 그림은 B1, B2, R1 순서로 설명할 수 있는데요. 구도심 공동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시민단체 혹은 마을공동체에서 자금이 부족하므로 공모사업 혹은 지원사업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구도심 공동화 문제가 대두될수록 공모사업을 더욱 많이 신청하게 됩니다. 그리고 공모사업을 많이 하게 되면 구도심 공동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될 수 있을 겁니다. B2로 넘어가면 로컬 거버넌스의 역량이 강화될수록 당장은 아니더라도 구도심 공동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겁니다. 구도심 문제가 대두되면 대두될수록 로컬 거버넌스의 역량 강화 노력이 더욱 많아질 겁니다. 문제는 R1입니다. 공모사업을 할수록 공모사업의 의존도가 높아지고 공모사업의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로컬 거버넌스 자체의 역량 강화 노력이 저하된다는 겁니다.

우리 동네에서는 마을만들기 지원사업과 도시재생사업이 이 문제에 해당합니다. 간단하게 도시재생 이야기를 해보면 홍성군에는 원도심에 무려 4개의 도시재생사업 지역이 있습니다. 하지만 도시재생사업 대상이 되면 주민들은 서로 싸우기 바쁩니다. 평소에 알지도 못하던 이웃들이 도시재생사업에서 토지 보상과 같은 뉴딜사업을 통해 처음 만나다 보니 “누구는 보상을 더 받네!”, “누구는 보상을 적게 받네” 하면서 싸움부터 합니다. 그러고 나서 후반부에 마을공동체 사업을 하게 되는데 이미 사이가 극도로 안 좋아진 주민들끼리 마을 공동창업이나 동아리 사업 같은 일이 성립될 수가 없습니다.

저는 이 일이 홍성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전국적으로 비슷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돈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마을에, 다시 말해 공동체가 구성되어서 마을을 함께 만들 수 있는 자조 능력이 없는 곳에 정부가 선제적으로 투자하면 사업이 망한다고 생각합니다.

공모사업 의존도가 높을수록 로컬 거버넌스 자체의 강화 노력이 축소되기 때문에 공모사업은 근본적 대책이 될 수 없습니다. 공모사업으로만 사업을 진행하면 공모사업에 억지로 자기 단체의 모습을 욱여넣어 본래 정체성이 훼손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공모사업을 진행하되 공모사업을 자본금 삼아 독립적인 사업을 진행하는 방법은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홍성에서는 지역 사람들이 함께 콩콩콩종합예술협동조합을 만들었습니다. 지역에 공방을 운영하거나, 준비하는 주민들이 많은데 단독으로 운영하자니 운영비가 만만치 않고 판매처와 교육사업 등을 기획하기가 어려워서 포기하는 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홍성 원도심은 협동조합을 만들기 쉬운 기반이 아닙니다. 그래서 홍성YMCA가 투자하는 방식으로 작년 11월에 협동조합을 창립하고 올해 3월에 직접 공간을 리모델링해서 본격적인 영업을 시작했습니다. 리모델링을 하다가 돈이 부족하면 12만 원, 17만 원씩이라도 쌈짓돈을 털어서 같이 했습니다. 이렇게 시작하니 단체의 독립성이 보장된 상태에서 소신 있게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직 협동조합은 가난한 아이러니를 극복하진 못했습니다. 조합원들은 물건이 없어서 못 팔 정도로 바쁩니다. 그러나 콩콩콩종합예술협동조합은 주민이 먼저 주민들이 원하는 모습을 그리고 실천함으로써 독립성을 확보하고 지자체의 지원 혹은 협력을 구함으로써 스스로 마을을 만들어 갈 수 있었습니다.


프리마켓을 운영하는 콩콩콩종합예술협동조합./출처=정재영 총장

물론 협동조합으로서는 아직 운영이 쉽지 않습니다. 사무국장 인건비, 기타 협동조합 운영에 필요한 경비 등을 자체적으로는 충당하기는 아직 버겁습니다. 하지만 주민들이 직접 만든 독립단체이기 때문에 지원사업 받을 때의 모양새가 다릅니다. 과거 지원사업 공모가 발표되면 지원사업의 의도를 파악하고 그 의도에 맞게 단체의 사업내용과 모양새를 맞춰야 했다면, 콩콩콩종합예술협동조합은 주민주도의 단체로서 정체성이 뚜렷하기에 오히려 지자체에서 협동조합의 모양새에 맞춰 사업을 구상해줍니다. 그래서 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프리마켓이나 교육사업 등에도 협동조합의 가치가 훼손되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업의 흐름이 일관성이 있고 협동조합을 이용하는 지역주민들도 쉽게 협동조합의 모양새를 인지합니다. 그래서 마을과 함께 성장하는 협동조합으로서 자리매김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지원(공모)사업은 말 그대로 지원사업이지 단체 본연의 사업이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우리일 때 도움을 받으면 그 도움이 우리의 것이 되지만, 우리가 아직 우리가 아닐 때 도움을 받으면 도리어 그렇게 받은 도움을 우리로 착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도시재생지역에서 도전적으로 만든 콩콩콩종합예술협동조합은 주민주도 마을공동체의 초석이라고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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