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300마리가 만든 신뢰, 이곳 우유는 믿을 수 있다 - 덴마크 최초 낙농 협동조합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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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300마리가 만든 신뢰, 이곳 우유는 믿을 수 있다
[오마이뉴스 창간 14주년 기념④] 덴마크 최초 낙농 협동조합을 가다
<오마이뉴스>는 창간 14주년 특별기획의 하나로 <행복사회의 리더십>을 몇 차례에 걸쳐 연재한다. 지난해 오연호 대표기자가 연재한 '행복지수 1위 덴마크의 비결을 찾아서'의 속편격이다. 덴마크 행복사회의 뿌리를 찾아가면서 우리는 더 나은 행복사회를 위해 오늘 어떤 씨앗을 뿌릴 것인지를 모색해본다. [편집자말] |
나는 과일을 좋아한다. 그래서 아침식사 때 얼마나 싱싱한 과일이 있느냐를 가지고 그 호텔을 평가한다. 반면 우유나 치즈, 버터 등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시골출신이라 어려서 그런 것을 먹어본 적이 없어서인지 입에 당기지 않는다. 그래서 빵을 먹을 때도 버터를 바르지 않고 그냥 먹는다. 특히 몇 년 전부터 우유가 과연 인간에게 이로운가에 대한 논란이 이는 것을 보면서 나는 우유제품과 더욱 멀어졌다.
덴마크 최초의 낙농 협동조합을 찾아서
그런데 덴마크만 오면 달라진다. 우유를 먹는다. 우유를 쭈욱 한 컵 들이키면 참 신선하다. 왠지 신뢰가 간다. 내 눈으로 보지 못했지만, 덴마크 농부들은 소를 키우고, 젖을 짜고, 그것을 식품으로 만들어낸 과정에서 기본을 잘 지킬 것 같은 믿음이 있는 것이다.
왜 그럴까? 우유는 치즈, 버터, 요거트 등 여러 유제품의 재료다. 그런데 덴마크 근현대사를 보면 이곳 농부들은 우유에서 더 중요한 것을 만들어냈다. 바로 '신뢰'라는 가치다. 신뢰야말로 덴마크 농부들이 협동조합을 하면서 생산한 것 중 가장 부가가치가 큰 게 아닐까? 낙농 협동조합이 덴마크 농촌을 경제적으로 살렸다면,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신뢰는 덴마크 사회 전체를 튼튼하게 만들었다. 덴마크가 오늘날 행복지수 세계 1위의 나라가 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 이 작은 농가에서 협동조합 운동이 시작되었다. 1882년 26명의 농민들이 참여한 낙농 협동조합 건물. 지금은 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 |
ⓒ 김민지 |
2014년 1월 24일 오후, 나는 그 신뢰 생산지를 향해 차를 몰았다. 덴마크에서 맨 처음 낙농 협동조합이 만들어진 곳.
유틀란트(Jutland)의 중서부에 있는 작은 마을 예딩(Hjedding)에 도착하니 도로변에 허름한 건물이 하나 서 있다. 단층짜리인 이
벽돌집은 20평 정도 크기로 아담했다. 여기다. 원래 한 농부의 농가였던 이 작은 집이 덴마크를 크게 바꿔놓았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옛날 농부들이 사용했던 낙농 기계들이 그대로 설치돼 있다. 농가에서 수거한 우유를 쏟았던 큰 나무통. 증기엔진이 장착된 보일러,
우유에서 크림을 분리해내는 장치, 크림에서 버터를 만들어내는 곳. 우유에서 치즈와 버터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 공정을 직접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하나하나가 구경할 만했다.
나는 이 지역 박물관 소속 역사해설가인 샬로테 웨스트(Charlotte
West)씨의 안내를 받았다. 1882년 6월 10일 첫 가동된 이 낙농장은 26명의 농민들이 참여한 협동조합에 의해 운영됐다. 그들이 가진
소는 300여 마리.
그런데 농민들은 처음에 어떻게 협동조합을 만들 생각을 했을까? 이런 일엔 항상 선각자가 있다. 협동조합을
하자고 동네 농민들을 설득한 이는 청년 스틸링 안더슨(Stilling Andersen)이었다. 샬로테씨는 이 협동조합운동이 그룬트비의
농민고등학교 운동과 매우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말했다. "농민의 아들들이 그룬트비 학교에 들어가 서로 힘을 합하여 농촌을 살려야 한다고 다짐하고
돌아와 협동조합 만드는 일에 앞장섰다"고 했다. 청년 안더슨도 그 중 한 명이었다.
안더슨은 각 농가마다 개별적으로 우유로 버터와
치즈를 만드는 것보다 이렇게 공장을 차려 함께 만들면 훨씬 쉽게, 그리고 더 많은 수익을 얻을 것이라고 설득했다. 물론 처음부터 모든 농민들이
동의한 것은 아니었다. 그 동네에서 소를 키우던 농가의 3분의1은 협동조합 방식에 의문을 표시하고 동의하지 않았다. 그들은 약 100마리의 소를
가지고 있었다. 안더슨은 만약 그들이 손해를 보면 개인적으로 배상해주기로 하고 우유 원료를 받았다. 처음엔 그렇게 비조합원으로 참여한 것이다.
농민들의 대발견 '협동하면 이득이 된다'
기회는 위기에서 온다. 만약 당시 덴마크
농촌이 위기에 처해있지 않았다면, 그냥 잘 살았다면 협동조합을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 아닐 것이다. 생존을 위한 몸부림만큼 큰 에너지는 없다.
1880년대는 때마침 덴마크 농촌이 궁핍 속에서 일대 전환을 겪는 중이었다. 그동안 곡식을 재배해 수출하는 것이 주요
수입이었는데, 미국과 우크라이나에서 값싼 곡식들이 영국 등 유럽시장을 장악하자 살 길이 막막해졌다. 그래서 농민들은 생존을 위해 곡식에서
가축으로 주 종목을 바꾸는 중이었다. 소, 돼지, 닭에서 나오는 버터, 치즈, 베이컨, 계란이 덴마크 농민들의 생명줄을 쥐게 됐다. 이렇게
전환기에 긴장을 하고 있었는데 '협동조합 방식으로 하면 된다'는 것이 확인......
출처: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65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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